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4~6개월쯤 지나면 보호자님들은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 작은 아이를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려야 한다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멀쩡한 생살을 째는 게 과연 사랑일까? 혹시 나의 편의를 위한 학대는 아닐까?”
하지만 수의학적 관점에서 중성화 수술은 ‘잔인한 거세’가 아니라 ‘치명적인 질병의 예방 접종’에 가깝습니다.
오늘은 감성적인 찬반 논란을 떠나, 중성화 수술을 안 했을 때 늙어서 겪게 될 무서운 질병(자궁축농증)과 가장 적절한 수술 시기에 대해 냉정하게 짚어드립니다.
1. 수술, 안 하면 어떻게 되나요? (수컷 vs 암컷)
자연의 섭리대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야생이 아닌 실내 생활을 하는 반려견에게 ‘성호르몬’은 시한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 암컷: 자궁축농증과 유선종양
중성화를 안 한 암컷 노령견의 사망 원인 1위입니다.
- 자궁축농증: 발정기가 반복되면서 자궁에 세균이 감염되어 고름이 가득 차는 병입니다. 배가 빵빵해지고 생식기에서 고름이 나오며, 24시간 내에 응급수술을 하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사망합니다.
- 유선종양: 가슴에 응어리가 잡히는 암입니다. 첫 발정 전에 수술하면 예방률이 99.5%에 달하지만, 세 번째 발정 이후에는 예방 효과가 거의 사라집니다.
⚠️ 수컷: 고환암과 전립선 비대증
수컷은 나이가 들면 전립선이 비대해져 소변을 잘 못 보거나, 항문 주변에 종양(항문 주위 선종)이 생기기 쉽습니다. 또한, 발정기 스트레스로 인한 가출, 마운팅, 공격성을 줄이기 위해서도 수술이 권장됩니다.
2. 언제가 골든타임인가요? (수술 시기)
“너무 어릴 때 하면 성장이 멈추지 않나요?”라는 걱정과 달리, 적절한 시기의 수술은 건강한 성장을 돕습니다.
📅 소형견 기준: 생후 5~7개월 사이
가장 이상적인 시기는 ‘첫 발정(생리)이 오기 직전’입니다.
- 성호르몬이 분비되기 전에 수술해야 질병 예방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시기와 비슷해서, 마취한 김에 ‘잔존 유치 발치’를 함께 진행하기도 합니다. (마취를 두 번 하지 않아도 돼서 경제적입니다!)
Tip: 대형견은 성장 속도가 다르므로 뼈 성장이 멈추는 1년~1년 6개월 이후에 하기도 합니다. 반드시 주치의와 상담하세요.
3. “우리 개가 달라졌어요” (부작용과 오해)
Q. 수술하면 살이 찐다던데? (Fact: O)
수술 후에는 성호르몬 생성에 쓰이던 에너지가 남게 되고, 기초 대사량이 약 20~30% 감소합니다. 똑같이 먹으면 당연히 살이 찝니다.
- 솔루션: 수술 직후부터 사료 양을 평소의 80%로 줄이거나, ‘중성화 전용 사료(Neutered)’로 교체하여 비만을 막아야 합니다.
Q. 성격이 소심해지나요? (Fact: X)
성격이 바뀌는 게 아니라, 성적 본능으로 인한 흥분과 공격성이 차분해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더 온순하고 애교 많은 강아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수술 후 관리법: 넥카라의 중요성
수술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주일간의 관리’입니다.
- 넥카라 절대 풀지 않기: 수술 부위가 간지러워서 핥거나 실밥을 물어뜯으면 상처가 벌어져 재수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최소 7일~10일(실밥 풀 때까지)은 넥카라를 씌워주세요. 플라스틱 넥카라가 불편하다면 푹신한 ‘쿠션형 넥카라’를 추천합니다.
- 산책 자제: 수술 후 2~3일은 무리한 산책을 피하고 실내에서 쉬게 해주세요.
- 하루 2번 소독: 병원에서 준 소독약으로 수술 부위를 톡톡 두드려 소독하고, 붓거나 진물이 나지 않는지 확인합니다.
5. 마치며: 미안해하지 마세요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이를 보면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이의 ‘생식 능력’을 뺏은 것이 아니라, 아이를 고통스럽게 할 ‘미래의 암’을 제거해 준 것입니다.
“수술 안 시키고 버티다가 10살 넘어서 자궁축농증으로 응급 수술 시키는 게 더 큰 불효”라는 수의사들의 말을 기억하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기 위한 보호자님의 용기 있는 선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