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님들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망설임 없이 ‘신부전(Kidney Failure)’을 꼽습니다. 실제로 노령묘 사망 원인 부동의 1위이자, 한번 발병하면 완치가 불가능해 평생 링거와 약을 달고 살아야 하는 잔인한 질병입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고양이의 습성입니다. 야생 본능이 남은 고양이는 아픈 티를 죽을 때까지 내지 않습니다. 보호자가 “어? 아이가 좀 이상한데?” 하고 병원에 갔을 땐, 이미 신장 기능의 75%가 망가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신장을 지키는 유일한 열쇠는 비싼 영양제가 아니라 바로 ‘물(Water)’입니다. 오늘은 고양이의 신장이 왜 그토록 약한지, 그리고 물그릇 앞을 피해 다니는 냥이들을 물 마시는 하마로 만드는 ‘음수량 증진 대작전’을 아주 상세하게 풀어보겠습니다.
1. 왜 하필 고양이는 ‘신장’이 약할까?
고양이의 조상은 사막에 살던 ‘리비아 고양이’입니다. 물이 귀한 사막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양이는 체내의 수분을 최대한 재흡수해서 아주 진하고 독한 소변(농축뇨)을 싸도록 진화했습니다.
🚨 치명적인 진화의 대가
소변을 농축하는 과정에서 신장(콩팥)은 엄청난 과부하를 견뎌야 합니다. 게다가 사막 유전자 때문에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몸에 물이 부족해도 물을 찾아 마시지 않는 습성, 이것이 현대의 집고양이들이 만성 탈수와 신부전에 시달리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2. 집사가 놓치면 안 될 신호: 다음다뇨(PUPD)
신장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농축 능력이 떨어져 소변이 묽어집니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갑자기 물을 많이 마시기 시작합니다. “우리 애가 갑자기 물을 잘 마셔요! 기특해라”가 아니라, “큰일 났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 증상 | 세부 내용 (Check List) |
|---|---|
| 감자 크기 증가 (다뇨) |
화장실 모래가 뭉친 덩어리(감자)의 크기가 평소보다 커졌거나 개수가 늘어났습니다. 소변 색이 물처럼 투명해집니다. |
| 물그릇 비우기 (다음) | 평소엔 거들떠도 안 보던 물그릇을 싹 비우거나, 화장실 변기 물, 싱크대 물까지 탐을 냅니다. |
| 기타 증상 |
이유 없는 구토(헤어볼 아님), 체중 감소, 털이 푸석해짐, 입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남. |
3. 음수량 늘리기 전쟁: 집사의 필승 전략 3가지
고양이 하루 권장 음수량은 체중 1kg당 약 50ml입니다. (5kg 고양이라면 하루 250ml, 우유 한 팩 분량을 마셔야 합니다.) 건사료만 먹는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이 양을 채우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집사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전략 1. ‘그릇’부터 바꿔라 (수염 피로도)
고양이의 수염은 매우 예민한 감각 기관입니다. 물을 마실 때 수염이 그릇 벽에 닿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Whisker Stress).
- 넓고 얕은 그릇: 수염이 닿지 않는 넓은 냉면기나 유리볼을 사용하세요.
- 재질의 중요성: 플라스틱 그릇은 세균 번식이 쉽고 턱드름을 유발합니다. 도자기나 유리, 스테인리스 소재를 추천합니다.
- 투명한 물: 고양이는 시력이 좋지 않아 수면의 높이를 잘 가늠하지 못합니다. 투명한 유리그릇을 쓰면 수위를 확인하기 쉬워 더 잘 마십니다.
전략 2. 물의 위치 선정 (풍수지리설)
밥그릇 바로 옆에 물그릇을 두지 마세요. 야생 본능상 ‘식사 장소(사냥감) 옆에 있는 물은 오염되었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 밥그릇과 떨어진 곳, 화장실과 멀리 떨어진 곳에 물을 두세요.
- 고양이가 자주 다니는 길목(사냥터) 곳곳에 ‘워터 스팟’을 3~4군데 이상 만들어주세요. 지나가다 “어? 물이네?” 하고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게 해야 합니다.
전략 3. 최후의 수단, ‘습식 사료’ (습식 급여)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건사료의 수분 함량은 10% 미만이지만, 습식 캔(주식 캔)의 수분 함량은 70~80%입니다.
[습식 효과] 하루 두 끼 중 한 끼만 습식으로 바꿔도, 자연스럽게 하루 필요 수분의 절반 이상을 섭취하게 됩니다. 억지로 물을 먹이는 스트레스 없이 음수량을 채우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입맛이 까다로워 캔을 안 먹는다면, 좋아하는 간식(츄르)에 물을 조금씩 타서 ‘츄르탕’을 만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4. 정수기 vs 물그릇, 뭐가 더 좋을까?
많은 집사님이 고양이 정수기를 고민합니다. 정답은 ‘냥바냥(고양이마다 다름)’입니다.
- 흐르는 물 선호파: 싱크대 수도꼭지나 샤워기 물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졸졸 흐르는 정수기가 효과적입니다. 호기심을 자극해 음수량이 확 늘어납니다.
- 고인 물 선호파: 기계 소음(모터 소리)을 싫어하거나 잔잔한 물을 좋아하는 아이는 정수기를 무서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에겐 매일 갈아주는 신선한 물그릇이 최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수돗물을 줘도 되나요, 생수를 줘야 하나요?
A. 한국의 수돗물(아리수 등)은 수질이 좋아 급여해도 무방하지만, 소독약 냄새에 예민한 고양이들은 싫어할 수 있습니다. 하루 정도 받아두어 염소 성분을 날린 물이나, 정수기 물/생수를 급여하는 것이 기호성 측면에서 더 좋습니다. 미네랄이 너무 많은 생수(경수)는 결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Q. 강제 급여(주사기로 물 먹이기)를 해도 되나요?
A. 이미 신부전 진단을 받아 탈수가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강제 급여는 고양이와의 신뢰 관계를 깨뜨리고, 물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트라우마)을 심어주어 스스로 마시는 것을 더 거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Q. 피오줌(혈뇨)을 쌌어요. 신부전인가요?
A. 혈뇨는 신부전보다는 ‘특발성 방광염’이나 ‘요로 결석’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역시 물을 적게 마셔서 생기는 질병입니다. 소변을 못 보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거나 울부짖는다면 응급 상황이니 즉시 병원에 가야 합니다.
물 한 모금이 1시간의 수명을 늘립니다
“물을 마시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양이에게 물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야생의 본능 때문에 목마름을 참는 아이들에게, 집사는 끊임없이 신선한 물을 권하고 유혹해야 합니다.
오늘 퇴근길에 예쁜 유리그릇을 하나 사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집안 곳곳에 보물찾기하듯 물그릇을 숨겨두세요. 아이가 지나가다 무심코 마신 그 물 한 모금이 모여,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따뜻한 10년, 20년의 시간을 만들어줄 것입니다.